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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가 길게 늘어지고 짙어지는 시간. 도시는 고유색을 잃고 온통 강렬한 주홍으로 물들고 있었다. 먼지바람으로 인해 시야가 흐릿했지만 그렇기에 골목 입구에 선 상대의 실루엣만은 뚜렷하게 보였다. 오렌지빛 태양이 마치 황야의 산맥처럼 솟아있는 모자의 크라운에 걸쳐있었다. 다소 만화적인 등장이 그답다는 우스운 감상을 남긴 전직 군인은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에도 당황하는 법 없이 즉각 움직였다.
목표가 자리를 박참과 동시에 카우보이 모자를 쓴 사내 역시 달리기 시작했다. 익숙한 동네는 아니었지만 그건 상대방도 마찬가지일 터. 이 시점에 모습을 드러낸 것까지 전부 계산된 행동이었다. 예상한 방향으로 도주하는 상대의 뒷모습을 보며 콜 캐서디는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길고 비좁은 골목 끝, 자신의 키보다 한참 솟아있는 벽을 가뿐히 넘는 모습엔 저도 모르게 혀를 찰 수밖에 없었지만.
여전히 무시무시한 능력이군. 사람한테 대체 뭘 주입한 건지. 속으로 투덜거린 캐서디는 모자가 날아가지 않도록 한 손으로 눌러 잡으며 벽을 넘는 대신 오른쪽 길로 꺾어 달렸다. 지금까진 전부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 미리 점찍어둔 구역으로 목표물이 진입하는 건 철저한 조사와 약간의 운에 건 도박이었다. 하지만 그가 모습을 드러내기만 한다면 붙잡을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현상금 사냥꾼의 삶은 진작에 손을 털었지만 오랜 세월 몸에 밴 본능은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캐서디는 언제나 탁월한 추격꾼이었다. 그는 특히 한 번 정한 타겟에 대해 혀를 내두를 만큼의 집요함이 있었다. 거기다 이건 당장의 생계를 위한 돈벌이도, 복잡한 현실에서 눈을 돌리기 위한 유흥 거리도 아니다. 지키고자 하는 신념을 바탕으로 기어코 놓지 못한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었다. 추격에 임하는 자세가 남다르다 이말이다.
성인 남성이 겨우 들어설 만한 너비의 골목은 끝없이 이어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캐서디의 머릿속엔 정확한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해가 저물며 주변의 공기가 차츰 식어간다. 빛이 닿지 않는 건물 뒷편은 밤이 빠르게 찾아온 것처럼 어둑했다. 쉼 없이 달리던 카우보이는 미리 표시해 둔 벽을 발견하고 멈췄다. 다섯 갈래로 나누어진 건물 사이의 작은 공터 같은 공간이 나타났다. 빛과 그림자의 경계에 서서 뒤를 돌아보니 작렬하는 석양이 얼굴을 물들인다. 목이 바싹 타오른다. 후우. 크게 숨을 내쉰 그는 반대편 길에서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으며 숨을 죽이고 벽에 바짝 붙어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다 댔다.
일정한 뜀박질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캐서디의 심장 또한 박자에 맞춰 가속한다. 포장이 덜 된 바닥의 흙먼지를 밟는 소리, 너덜거리는 철망의 문을 박차고 여는 소리. 빼곡한 건물의 끝자락을 보고 속도를 줄이는 소리. 오롯이 다가오는 소음에 집중하며 눈을 감고 있던 그는 완벽한 타이밍에 섬광탄을 상대방의 진로에 집어 던졌다. 모자챙을 잡고 시야를 보호하며 강화 군인이 급하게 몸을 제동하는 소리에 집중한다. 제대로 걸려들었군. 머리 아픈 일은 끝났으니 이제 몸으로 부딪칠 시간이었다. 피스키퍼는 정확히 먼지 속 인영을 가리켰다. 자신을 향하고 있는 총구에 기민하게 반응한 상대가 뒷걸음 치며 손을 아래로 움직이는 순간, 캐서디는 미리 준비해 둔 물건을 남자의 발 쪽으로 굴렸다. 동그란 공처럼 생긴 기기가 남자의 구둣발에 닿자 밧줄처럼 늘어나 다리를 꽁꽁 싸맸다. 남자는 손도 못 써보고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어딜 그리 급히 가십니까?”
“……땅거미.”
깔끔한 작전 성공에 리볼버를 어깨에 걸친 채 남자에게 다가가던 캐서디는 뜬금없는 소리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잠깐. 땅거미? 어라?
“네가 쓴 작전 교본을 대체 누가 검토했다고 생각하는 거지, 애송이.”
무릎부터 결박당해 어정쩡한 자세로 땅바닥에 누워있던 남자의 한 손이 캐서디를 향해 있었다. 솔저76은 양손으로 쥐는 펄스 소총을 주로 사용한다. 캐서디의 시야에 들어온 건 76의 주 무기도, 임시방편으로 쓸법한 작은 권총도 아니었지만 오버워치에 발을 담가본 사람이라면 모를려야 모를 수가 없는 물건이었다.
“이런…”
푝. 가볍게 공기를 가른 작은 투사체가 목에 날아와 꽂혔다. 본능적으로 왼손으로 목을 감싸 쥐었지만 이미 늦었다. 순식간에 시야가 울렁이며 몸이 무거워진다. 마지막 발악으로 욕지거리를 뱉은 카우보이는 보기 좋게 흙바닥에 머리를 처박으며 쓰러졌다.
*
“엄밀히 말하면 땅거미는 아닙니다만.”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천장을 보며 캐서디가 말했다. 윗집에선 파티라도 열렸는지 쿵쿵 울리는 소리와 함께 작은 먼지 파편들이 얼굴 위로 떨어졌다. 깨어난 직후라 그런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가 어떻게 아나의 수면총의 여파에 대해 알고 있는지는 차치하고.
“작전의 전제 조건이 완전히 달라요.”
최소 세 명이 투입되는 작전이었으니까 말이다. 상체를 일으킨 캐서디는 머리카락을 툭툭 털어내며 주변을 둘러봤다. 놀랍게도 손발이 자유로웠다. 눈을 뜨기도 전에 인기척이 느껴지더라니 멀지 않은 곳에 솔저가 자신의 무기를 살피며 앉아 있었다.
“…그걸 읽은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정신 차렸으면 일어나. 이동한다.”
저 놈의 바이저 때문에 표정을 읽을 수가 없단 말이지. 펄스 라이플과 장비들을 점검한 솔저는 모든 짐을 더플백에 쑤셔 넣고 우비같이 생긴 어두운 외투를 몸에 걸쳤다. 영문은 모르겠으나 캐서디도 눈치 빠르게 낡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고 테이블의 용도인 듯한 나무 상자 위에 놓인 모자를 집어 들었다. 똑바로 서서 주변을 돌아보니 그제야 어두운 공간의 상태가 눈에 들어온다. 뭐 5성급 호텔을 고집하는 성격은 아니라지만 캐서디의 눈에도 도저히 사람이 살 만한 곳으론 보이지 않았다. 바로 전까지 누워있던 소파는 가죽이 전부 해지고 뜯어져 내장재가 쏟아지기 직전이고 마감되지 않은 벽은 부서져 안의 철근이 보이는 곳도 있었다. 천장이 울리는 건 파티가 아닌 지상을 나다니는 사람들 발걸음 때문이었나보다. 혀를 내두르며 서 있자 어느새 다가온 솔저가 자신이 입은 것과 비슷한 외투를 캐서디의 가슴팍에 던지곤 문으로 향한다. 흥. 솔저는 거의 모든 대화를 불만족스러운 숨소리로 대체하고 있었으나 콜 캐서디가 누구겠는가. 눈칫밥으로 연명한 삶이다. 그는 곧장 입을 다물고 노병의 뒤를 따랐다. 허름한 공간을 나서며 솔저가 뒤를 돌아봤다. 여전히 눈을 볼 순 없었지만 인상을 잔뜩 쓰고 있다는 것 하나는 알 수 있었다.
“그 바보같은 모자는 벗어.”
둘은 완전히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의 그림자 속으로 걸어 나갔다. 솔저의 은신처로 추정되는 곳을 떠난 이후로 그는 말은커녕 캐서디를 처다보지도 않았는데, 그런 무관심한 태도에 더더욱 흥미가 당길 수밖에 없었다. 아까 그 골목에 두고 갔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텐데 굳이 기절한 캐서디를 옮긴 데다가 쫓고 쫓아도 기어코 잡혀주지 않던 남자가 지금 동행을 허락한 이유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말 붙일 틈만 노리며 희끗한 백발 뒤를 따라가는데, 솔저가 정면을 응시한 채 조용히 입을 열었다.
“7시 방향.”
“반대편 옥상에 있는 놈까지 셋이요.”
고개를 짧게 끄덕이는 움직임엔 여전히 군더더기가 없다. 미리 잠입하고 있었을까요? 그래 보이는군. 아지트로 돌아왔을 때 침입의 흔적이 있었다. 그렇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난, 왜 데려가요?
캐서디가 마지막 질문을 뱉기 전 솔저가 고개를 숙이며 작전을 읊었다. 아까의 골목길로 유인해 좁은 곳에서 상대를 제압하잔 얘기였는데 솔직히 반 이상 흘려들었다. 엇비슷한 키인데 둘 다 몸을 낮춘 상황에 얼굴을 돌리니 모든 게 너무 가까웠다. 몸이 닿진 않았지만 상대의 호흡과 온기가 느껴질 정도의 거리. 이건 잭의 체향인가? 저러고 다니는 인간에게서 날법한 향이 아닌데. 어쩌면 캐서디가 상상으로 만들어낸 향기였을지도 모른다. 밀라노 이후로 그와 이렇게 가까이 붙는 건 처음이었다. 브리핑을 마친 솔저는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콜 캐서디는 멍청한 사춘기 소년처럼 얼빠진 표정으로 침을 꼴깍 삼켰다.
지원군을 부른 것인지 예상보다 두 배인 대여섯명 정도의 암살자들을 처리한 후 겨우 숨을 돌렸다. 이쪽도 피해가 없진 않았으나 솔저의 생체장으로 충분히 회복할 수 있는 경미한 부상이었다. 단둘이 호흡을 맞춘 적이 거의 없는데도 전투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마치 캐서디가 어떻게 움직일지 전부 알고 있다는 듯 소통 없이도 완벽히 그에게 맞추며 적을 쓰러트리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단순히 그가 강화 인간이라서, 경험이 많은 군인이라서 그렇다기엔 콜 캐서디의 겸손이 약간 부족했다.
“나한테 관심 있어요?”
잔뜩 찌푸린 미간과 한심해하는 한숨 소리가ㅁ 돌아온다.
“머리를 다쳤나?”
“그럼 바쁘신 양반이 이유 없이 그걸 다 읽었다고?”
생체장의 기묘한 파동을 느끼며 벽에 기대앉은 캐서디가 솔저를 향해 웃었다. 칠흑 같던 하늘이 점차 밝아지고 있었다.
“…블랙워치 관련 문서는 전부 내게 올라오게 했으니까.”
“반절은 공식적인 문서도 아니었는데.”
“그래. 정말 형편없었지.”
솔저가 깊은숨을 내쉬며 땅에 라이플을 내려놓았다. 평범한 사람처럼 옆에 앉으면 될 것을, 그는 굳이 거리를 유지하며 벽에 기대섰다. 시선은 여전히 먼 곳을 향해 있었다.
불만이 많던 시기였다. 특히나 자신의 보스에게. 하지만 몸으로 부딪치기엔 기술도 체급도 따라주지 않았고 꽤나 자신있는 입방정도 먹힐 상대가 아닌지라. 힘없는 일개 대원이 할 수 있는 거라곤 그가 그토록 끔찍해하는 서류 작업의 양을 늘려주는 일뿐이었다. 레예스를 기어코 엿먹이겠다는 의지로 써올린 별 말도 안되는 보고서며 제안서를 잭 모리슨도 전부 봤다고 생각하니 괜시리 귀가 화끈거렸다. 이미 오래전 일인데도 그랬다.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잭 모리슨은 그 잡다한 내용을 꽤 잘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가벼운 장난처럼 끄적인 글 중에는 제법 진심을 담은 것도 있었는데, 그게 콜 캐서디가 살아가는 방식중 하나였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없지 않은가. 그러다 걸리면 장땡이고, 아니면 애초에 진지하지 않았다며 웃어넘길 수 있었다. 결국 거절 당하는게 무서웠던 어린 소년의 미흡한 자기 위로였을 뿐이라는 사실을 이제 자각하고 있지만. 지금 보니 후에 그중 몇 가지가 공식 교본으로 채택된 데에는 잭의 영향력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속이 다 까발려지는 감각은 언제나 익숙하지 않다. 목 안이 간질거리는 기분에 캐서디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을 돌렸다.
“솔직히 그 골목에 버리고 갈 줄 알았는데요.”
“……”
“대체 뭘 하고 다니길래 저런 사람들에게 쫓기는 겁니까?”
솔저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캐서디를 바라본다.
“내가 아니야.”
“…이쪽이 타겟이군요.”
평이한 캐서디의 대답에 솔저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알고 있었나?”
“그럴리가요.”
탈론이 전 오버워치 요원들을 사냥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었죠.
캐서디의 이름도 당당히 그 리스트에 올라는 있었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탈론의 목적이 무엇이든 자신은 우선 순위가 그리 높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 때문이었다. 조금 전 상대한 암살자들의 수와 실력을 생각하면 과하게 낙관적이었던 듯 싶지만. 그렇다면. 기대하지 않으려 해도 상황이 말해주는 바가 분명한지라 마음이 절로 들떴다.
“걱정했습니까?”
나를? 아, 결국 웃음이 새어 나온다. 입꼬리가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며 캐서디의 얼굴에 소년 같은 천진난만함이 떠올랐다. 입술을 말아 물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했으나 자신의 질문을 곱씹을수록 풀어지는 얼굴 근육을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뜻밖의 일들의 연속이다. 신경질적인 숨소리나 돌아오면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솔저는 그런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얗게 센 머리카락과 얼굴 절반 이상을 가리고 있는 위협적인 모습의 무법자. 대다수가 기억할 잭 모리슨의 모습이라곤 무엇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캐서디는 그에게서 자신이 알던 남자를 본다. 양쪽 발을 땅에 단단히 붙인 채 곧게 선 자세나 비스듬히 기울어진 얼굴 각도가, 낮게 한숨처럼 뱉는 헛웃음 소리가. 차가운 저 바이저 너머의 입가가 살짝 말려 올라갔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웃음이 헤픈 사람은 아니었지만, 또 누구처럼 언제나 얼굴이 굳어있는 사람도 아니었지.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이 점점 차오르더니 금방이라도 입 밖으로 쏟아질 것만 같아 시가 하나를 꺼내 물었다. 예의상 솔저를 향해 고개짓을 했지만 그가 시가를 받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그는 캐서디의 혼을 완전히 빼놓기로 작정이라도 했는지 별다른 말없이 손을 뻗었다.
캐서디의 손에 들린 시가를 가볍게 빼간 솔저가 반대편 손으로 바이저를 조작한다. 그의 머리카락과 같은 색의 연기가 뿌옇게 피어올랐다. 캐서디에게 허락된 건 솔저의 오른손과 새하얀 연기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인상의 조각들뿐이었다. 솔저가 뿜어내는 연기가 둘 사이를 가득 채웠다. 어느새 자신을 향해있는 시가를 받을 생각도 못 한 채 콜 캐서디는 또 넋을 잃고 만다. 얼굴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흉터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이제 날 쫓는 건 그만둬.”
“자의식 과잉이라고 들어봤어요?”
“더 중요한 일이 있지 않나.”
이어지지 않는 대화를 마친 솔저는 땅에 내려둔 더플백을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챙겨 들었다. 어느새 가면을 쓴 무법자로 돌아온 그가 펄스 라이플을 손에 쥐려던 순간, 캐서디가 섬광처럼 움직였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 손을 뻗어 솔저의 옷깃을 낚아챘다. 바이저의 붉은빛이 번뜩인다. 차가운 기기 위로 입을 맞출 생각으로 그를 잡아당겼으나, 강화 인간의 대처가 빨랐다. 가까스로 둘 사이에 팔을 넣어 캐서디를 멈춰 세운 솔저는 처음으로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런 솔저의 모습에 캐서디는 이마를 맞댄 채 만족스럽게 웃으며 손의 힘을 풀었다. 양손을 들고 천천히 거리를 벌리자 솔저는 언제 그랬냐는듯 평소의 고집스러움을 되찾았다.
“또 봅시다, 잭.”
캐서디의 말에 솔저76는 거칠게 뱉은 한숨으로 대답했다. 파랗게 질려있던 하늘의 끝자락이 강렬한 붉은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솔저는 그대로 몸을 돌려 골목 사이로 사라졌다. 짙은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다가, 이내 모습을 완전히 감춘다. 시가를 다시 머금으며 눈을 감았다. 연기와 함께 피어오른 야릇한 생각은 속수무책이었다. 이건 아무래도 내 탓은 아니지. 천천히 눈을 뜨고 밝아지는 풍경을 감상하던 캐서디는 자리서 일어나 모자를 꾹 눌러썼다. 또 새로운 날이 시작되고 있었다.
